불평 많은 안정 상태

위의 글과도 관련성이 있는데,
어렸을 때는 사람들이 쏟아내는 불평들을 해소시켜 주면, 당사자들이 더 행복해할줄 알았다. 분명 진짜 그런 사람 혹은 그런 상황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자리나 상황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계속 불평하는 것은 그 상태가 안정 상태일 가능성도 배제하지 못한다.
보통 이런 경우, 지금까지 거의 해결되지 않았던 것을 불평의 아이템으로 가져갈 가능성도 많다. 그래야, 이 안정상태가 오래 지속되니까…

평소에 떠드는 불평을 해소시켜주면, 어쩜 당신을 더 미워하거나, 아니면 더 안절부절할지도 모른다. 안정상태를 깨버린 것이기 때문이다.

누가 불평을 이야기 한다해도, 상황을 봐가며 해소적 접근을 해야 해고, 많은 경우 말을 잘 들어주는 Bar를 소개해 주는 것이 더 좋은 해결책일 수 있다.

왜 난 이것을 사회생활을 오래한 이후에 발견했을까…

PyCharm vs VS Code

AI는 주로 서버에서 개발을 하게 되는데, 다음과 같은 개발환경이 존재할 수 있을 것 같다.

  1. Jupyter Notebook을 이용한 web browser 상에서 개발
  2. PyCharm
    • 자신의 local computer에 X Server를 설치하고, enable X11 forwarding 상태에서 ssh로 접속해, AI 개발 서버에서 PyCharm Community 프로그램을 실행하는 방법
    • 자신의 local computer에 PyCharm Professional 설치하고, AI 개발 서버의 SSH Interpreter를 이용하는 방법
  3. Visual Studio Code
    • Extension: Remote – SSH를 이용하여, 코드 및 Interpreter가 모두 개발 서버에 있는 것이고, 단지 VS Code 실행 프로그램만 local computer에서 실행하는 방법
  4. vim, notepad, sublime, atom 등 text editor와 shell에서 python 명령어로 개발

개인적으로 JetBrains UI가 좋은데,
PyCharm Community를 X Client로 띄우는 방법은 코딩 및 디버깅에 논리적인 문제는 없으나, 개발 서버가 Busy한 경우, PyCharm IDE에서 code editing 반응이 부드럽지 않고,
PyCharm Professional은 SSH Interpreter의 지원으로 프로그램을 local computer에서 실행할 수 있으나, 실행할 코드가 서버에 있다는 개념이 아니라, local code path를 mapping 해 주는 개념이라, 코드 상에서 서버내의 file을 가리킬 경우, path 충돌이 있다.

Visual Studio Code에서 Extension: Remote – SSH를 활용하면, Interpreter도 코드도 모두 서버에 있는 것을 사용한다. 단지, VS Code IDE 만 local computer에서 실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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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위험한 관계

http://kyobo.link/lM8f

논리적 오류(logical fallacies)
– 크리스토퍼 디카를로의 <<철학자처럼 질문해라>>에 의하면 세 가지 원인이 논리적 오류를 유발한다.
– 첫 번째 원인은 [일관성이 결여된 모순]으로 추론 과정의 전제들이 상호 충돌하는 경우를 말한다. 예를 들어 국민의 자유가 가장 중요하다 주장하며 이를 위해 독재자의 권력이 더욱 강화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 두 번째는 [위선]이다. 말로는 선함을 강조하지만 정작 실천하지 않는 경우를 말한다. 사회 규범을 준수하고, 사회적 약자에게 친절하고, 매사에 교양있게 행동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실생활에선 온갖 불법을 저지르고, 약자를 탄압하고, 기본 소양조차 갖추지 못한 경우가 그 예이다. 위선의 경우는 신념과 연관된 경우가 많은데 대부분의 사람은 선량한 사람으로 보이고 싶어 하기 때문에 위선의 함정에 쉽게 빠져드는 반면 벗어나기는 매우 어렵다.
– 세 번째 요인은 [비형식적 오류]에 빠지는 경우이다. 감정에 휩쓸려 이성적인 판단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저 사람은 나쁜 사람이야. 왜냐하면 기분 나쁘게 생겼으니까”와 같은 주장은 감정을 기반으로 판단하여 논거를 증명하지 못하는 인신 공격의 오류이다.

욕망에 충실한 관계에서는 최소한 사기는 일어나지 않는다.

시대 전환(문화 지체)

회사 내 communication에서는 제3자적 관점이 존재해야 한다고 늘 강조해 왔다.

회사의 communication 시스템을 스스로 바꿀 수 없는 상황에서, 제3자적 관점이 없는 툴에서는, 가급적 빠지는 이 없게 더 포괄적으로 email을 작성하곤 했다.
그런데, S에서는 구성원들의 더 많은 생산성이 나왔고, L에서는 구성원들은 더 혼란스러워 했다.
분당의 어떤 회사에서는 누군가 왜 내가 포함되지 않는 프로젝트인데, 자신한테까지 메일을 보내냐고 항의가 있었다.
논현의 한 회사에서는 6시 이후에 슬랙을 사용하지 말아 달라는 요청도 있었다.
(수신자에서 준 권한 마져도, 자기 발로 차 버리는…)

필터링된 정보를 받는게 자신에게 얼마나 위험한건지, 점점 더 정보의 선택 권한을 수신자에게 넓혀 주는 것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거 같다.

위계적이고 수동적 구성원을 필요로한 시대에서 개방적이고 능동적인 구성원으로의 시대 변화를 못 따라오는 것 같다. ‘능동 결합 안정 상태’ 라는 글도 작성했었지만, 점점 그러한 세상으로 가고 있는거 같다.

https://gather.town/ 를 보며,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평소에 강조하던 3자적 관점을 글 말고, 회의에도 적용할 수 있는 것을 보면서, 스스로 발견한 진리적 문장의 적용 범위가 더 넓을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가르치지 말고, 이익을 주자

아직 유교의 잔재인지, 비즈니스 계약 관계인 회사를 학생과 선생님의 학교 관계로 오해 하시는 교장선생님 같은 권한자들이 종종 있다.

학교와 회사의 결정적 차이는 정보(지식)의 방향성에 있다. 학교는 정보를 습득(수신)하고, 회사에서는 정보를 구현(발산)하는데 있다.

가르침, 훈계, 충고가 비즈니스 관계에서 지나치게 언급되는 경우가 있다.
그렇게 했을 때, 충실한 수행자만 양산하지, 창의적으로 되기는 어려운거 같다.

이 블로그의 “A라고 말하고 B라고 듣는다” 시리즈에서 처럼,
각자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권한자에 대해서는, 단점 보다 장점으로 포장을 한다.
“사람은 좋다” – 서로가 만단 비즈니스의 계약관계는 생략한 채, 이웃집 사람을 언급하듯이 말할때, 저는 “아하, 이 사람 자기 역할을 못하는 구나” 하는 식으로 들리듯이,

회사가 교육을 많이 한다는 것은 “A라고 말하고 B라고 듣는다” 시리즈처럼 이익이 없다고 느껴진다.
회사가 특별히 홍보하지 않아도, 사내 할인 판매 등의 게시판들은 기가 막히게 찾아 내는 것을 주변에서 보아 왔을 것이다. 자신에게 이익이 되면, 특별히 알려주지 않아도 찾아서 하게 되어 있다.
지금 이 순간 자신이 수행하는 업무는, 자신에게 가장 큰 이익이 되어 돌아올 일을 수행하고 있을 것이다. 회사에서 어떤 일이 아무리 급하다고 해도, 아마 수도권 어딘가의 주택청약을 미뤄가며 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처럼…
조직의 권한자들은 원하는 방향에 꿀을 잔뜩 발라 놓으면, 벌들은 어떤 교육을 받지 않고도 몰려들 것이다.

나는 누구에게도, 원하지 않는데 강제로 영향을 주고 싶지 않다. 영향은 영향 받고 싶은 사람에 의해서만 스스로 변화하는 것이다. 이제 정보(이익)는 sender가 영향을 결정하는게 아니라, 정보는 누구나 접근 가능하고, 정보의 receiver가 자신의 변화를 결정하는 것이다.

IT의 발전으로 이제 정보의 독점은 점점 사라져 간다. 그래서 정보의 독점자들이 발휘하던 sender의 권한도 점점 흐릿해져 간다.

자신이 원하는 이익(정보)이 있는 곳에 자발적으로 모인 사람들이 능동적으로 결합되어 있는 상태를 희망하며,
비즈니스 관계에서 교육하지 맙시다. 원하는 방향에 이익을 줍시다.

PS)
정리된 글을 쓸 때 마다, 스스로 되뇌이는 것이, 내가 그 입장(사장 – 그럴 가능성은 낮지만)이 되었을 때에도, 현재의 생각을 유지하기 위해 적어 둡니다.

가짜 모범생

모범생에는 두 가지가 있어요.
진짜 모범생과 가짜 모범생이 있는데요,
진짜 모범생은 양심에 기초해서 도덕 규범을 잘 지키는 사람이에요.
가짜 모범생은 초자아에 기초해서 도덕 규범을 지키는 사람이에요.
초자아는 처벌 공포거든요.
어릴 때 동생을 괴롭혀서 아빠한테 맞았다. 그 다음부터 안 괴롭히긴 안 괴롭혀요. 그 규범을 지켜요. 그런데 왜? 아빠한테 맞을까 봐. 아버지에 대한 공포, 처벌에 대한 공포가 내면화돼서 그게 자기의 도덕 규범을 지키게끔 강제라는 거죠.
진짜 모범생은 자발적인 양심에 기초해서 규범을 지키기 때문에 정신건강이 굉장히 좋습니다. 그런데 가짜 모범생은 내면의 초자아가 자기를 규제하기 때문에 계속 쫓기듯이 살아요.
그리고 어떤 차이가 있냐 하면 진짜 모범생은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 관용적이에요. 자기가 규범을 지킨 건 자기가 좋아서 지킨 거지, 무서워서 지킨 게 아니기 때문에, 남들한테 굉장히 너그럽습니다. 그런데 가짜 모범생은 지키고 싶어서 지킨 게 아니고, 무서워서 지킨 거잖아요. 남들도 지켜야 돼요. 안 지키는 거 보면 열 받아요. 화가 납니다.

정보의 흐름

종단의 양동이는 홍수이거나 가뭄이죠.
수평을 말하려면, 이래야 할텐데요.
한마리의 고기도 놓지지 않고 다 잡으려면,
에이스가 먼저 고기를 잡으면 안되고,
제일 고수는 하수가 흘린 어려운 고기를 잡아야 한다.

노력해서 극복가능한 정치적 환경인지 잘 파악해야 한다.

조직의 종류

  1. “네 하겠습니다.” 하고 안하면, 큰 일 나는 조직이 있고,
  2. “네 하겠습니다.” 하고 해도 그만, 안해도 그만인 조직이 있다.

두번째 같은 경우, 오히려 “안되는데요” 라고 하는 것보다, “네 하겠습니다.”라고 하고 안하는게 차라리 나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두번째 같은 조직을 이끄는 관리자는 대게 에너지도, 제품에 대한 책임감도 없으면서, 권위만 앞세운다.

처세에 대한 이야기일 수 있어, 상업적 성공을 지향할거냐, 원만한 조직관계를 지향할거냐 자신의 선택의 문제이기도 하나, 과연 그렇게 흐릿하게 만든 제품이 사용자를 만족시킬지 의문이다.

위험을 대하는 자세

모든 업무적 활동에서 각각을 불법 혹은 합법 이분법으로 정의하기 어려운 경우가 있다.
이때 이 상황을 어느쪽에 서서 결정하는지를 보면, 결정자에 대한 메타가 될 수 있다.
만약, 결정자가 조직의 리더라면, 조직의 발전 방향에 대해서 유추해 볼 수 있다.

한국은 교육열이 뜨거우므로, 부모가 자식의 진로를 위해서라면,
위험을 감수하는 수준이 아니라, 불법의 영역으로까지 가서도, 어떤 행위를 한다더라 하는 이야기를 듣는다.
이처럼 위험할 것 같은 행위에서 상대를 대하는 애정의 수준이 나타난다.

요즘은 개인정보보호법 때문에, 매사에 걸리는 일들이 많다.
법을 위반하지 않는 방법을 찾아,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하는데,
위험에 대해서는 최대한 방어적 자세로 많은 것들을 버려야 한다면, 음…

구글 안드로이드도, 애플 아이폰도, 어떻게 성장해 왔는지 생각해 봤으면 좋겠고,
위험을 피하는 쉬운 결정 보다, 위험한 상황에서도 공동체가 유리한 방법을 찾으려는 노력이 있는지가
나에게 주는 중요한 메타 정보이다.